수필가/ 마야 윤윤행
<사>호주한국문학협회 정회원
“우리가 한 평생 살아가면서 자신과 마음이 맞는, 내 마음과 같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아니, 아마 절대 불가능할거야, 왜냐면 이 우주에 ‘나’는 오직 유일한 존재니깐.”
“서로의 성향,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날 수 있어도, 내 맘과 똑같은 사람은 결코 만날 수 없을 거라고.”
대답을 들은 그녀의 두 눈은 설마, 설마,...... 믿고 싶지도, 그렇게 되면 안 되는 데라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쳐다본다.
어릴 적부터 일찍이 죽음의 문턱을 오르내린 그녀라 삶에 대한 인식도, 인간관계의 대처 능력도 사뭇 다르다.
우여곡절 끝에 살아났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고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남들 보다 더 열심히 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남들이 좀 쉬어가라고 조언하지만, 부지런함이 자신의 힘이라고 말한다.
운 좋게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을 해서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아 지금은 어엿하게 아들과 딸은 대학생이 되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착하다는 말을 듣고 사는 게 내심 얼마나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 아닌지 모른다며 만족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이민을 와서 보니 모든 게 낯설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뭐라도 일은 해야겠고, 말은 안통하고, 암담하던 차에 한국에서 일 한 경험으로 그래도 장사가 낫겠다 싶어 가게를 차리게 되었노라고.
그나마 장사는 자신 있다고 생각해서 겁 없이 가게를 준비하는 동안, 믿고 일을 맡겼던 사람들에게 계약사기도 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시간은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며 한숨 지며 고백한다.
한국의 일 때문에 남편과 함께 올 수 없어 자동 기러기 가족이 되어, 해가 거듭될수록 남편의 빈자리는 너무 컸고, 일 년에 두 세 번은 서로가 바다 위를 날아 견우와 직녀처럼 만나지만, 예고 없이 수시로 들이닥치는 허탈감과 외로움에 그녀도 이제 많이 지쳤노라고 말한다.
시드니에 발을 디딘 순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 여겼기에 별 생각 없이 아이들 영어만 좀 되면 가야지 라는 마음으로 어떡해서라도 견뎌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문을 걸어가며 6년을 잘 버텨내었다는 그녀.
가게에 찾아오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손짓발짓으로도 모자라면 에라 모르겠다! 호탕하게 웃어버리면 그만이었다고........ 정말이지 황당하고 곤란한 때도 많았지만, 사람과 사람, 감정과 감정이 오가다보니 손짓발짓, 표정으로 적당히 해결되었다며, 지나간 세월이 떠올랐는지 얼굴에 어둔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녀가 그나마 좌충우돌의 이민기를 6년 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호주의 천연 자연과 복지 환경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녀 또한 몸이 불편한 관계로 고국에 비해 실제로 호주에서 장애복지및 노인에 대한 배려와 편리시설이 월등함을 피부로 직접적으로 느꼈을 테니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몸 안에 보조대가 끼워져 있고, 자신의 뼈가 아닌 쇠붙이를 끼우고 살다보니 때때로 어깨와 허리, 다리가 쑤셔 죽을 맛이라 잠자기 전에 술을 한 잔 마시고 자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라 했다.
우연히 찾아든 낯가림 심한 또 다른 이방인 아줌마와 유학 왔다 호주가 좋아 영주권을 받고 진득하게 눌러 살고 있는 노처녀. 모두가 불혹을 훌쩍 넘긴 여자들이 만났다.
이방인이라는 비슷한 처지가 서로의 말문을 터이게 했고, 그녀들이 인사를 나누기까지 2년이 걸린 셈이니 어지간히 거리를 두고 지켜봐 온 셈이다.
할 말도 많고 가장 성격이 활발한 노처녀 아가씨는 현지인들을 상대로 일을 하다 보니 직장에서 받는 문화적 박탈감과 소외감은 세월이 지나도 좀체 간격이 좁혀지지 않아 억지웃음을 지을 때가 많다보니 스트레스가 알게 모르게 쌓인다고 한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스트레스를 털어내지 않으면 우울증으로 괴롭기에 마음 맞는 사람과 허심탄회한 대화가 필요해서 온다며, 가뭄에 콩 나는 것 보다 더 힘들게 만난 날, 반가움에 얼른 가게 구석진 자리에 신문지를 깔고, 냉동고에 있는 삼겹살을 꺼내 소주잔을 건네 든다.
우리의 가게 주인은 신이 나서 외국 손님들이 와도 싱글벙글 새 젓가락을 꺼내 삼겹살 한 점 집어 손님에게 건네기도 하고, 맛있으니 맛보고 가라고 서툰 영어로 살갑게 굴면, 그 중에 한 두 명은 한국 음식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Good’ 하며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손을 흔든다.
좁고 구석진 자리라 사람들의 눈길을 피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 그래도 음식 냄새 풍기는 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까칠하게 굴면 아~~ 괜찮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제친다.
오랜만에 그녀들과 유쾌한 이야기에 눈물 나도록 웃다보면,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긴 지금 이 시점은 새로운 뭔가를 찾아 나서기보다 그동안의 삶의 지혜를 모아 안정된 삶의 틀을 유지하고 살아가야 할 때란 생각이 문득 든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지점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생의 모진 파도도 만났고, 철썩 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배신감도 맛보았고, 좋은 인연과의 기쁨도 슬픔도 어느 정도 감내한 세월이었기에 지나온 삶의 경험을 잘 조합해 보면 사람과의 관계, 사회적인 관계, 복잡한 관계에서 지금쯤은 마음이란 걸 능숙하게 조율할 줄 아는 그 때가 온 것이라고.
그래서 남은 절반의 인생을 위해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비록 다리도 제대로 펴기 힘든 비좁고 누추한 곳에,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앉았지만, 더없이 아늑한 마치 고향집 구들방에 앉아 ‘호호 하하’ 세상 걱정 없이 웃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 든다.
다음날이면 어제의 옷은 벗어버리고, 오늘의 새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고, 새 마음으로 하늘, 구름, 태양, 바람, 사람들을 만나 해맑은 웃음과 희망을 쏟아내길 간절히 바래본다.
갓 내린 커피 향을 음미하며 스텐 톨러의 <행복의 절반 친구> 중에 나온 구절을 소리 내어 읊어 본다.
“사람은 볶기 전의 원두 같은 존재다
저마다의 영혼에 그윽한 향기를 품고 있지만
그것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화학반응이 필요하다.
그래서 볶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고,
어울리면서 서로의 향을 발산하는 것이다.”
서로가 잘 어우러져 향을 발산하고 가장 적절한 맛을 낼 수 있도록 신뢰하는 마음, 배려와 사랑의 기술을 배워 나간다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롭고 맛있는 커피 같은 친구와 함께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