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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살이

문화공간/문학공간 | 2012/03/21 15:39 |

시인: 석계/안상기

<사>호주한국문학협회이사

 

 

누가 날더러 청춘이 바람이냐고 묻는다면

누가 날더러 인생이 구름이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묻느냐고 말하리라

인생은 살아 볼만하기에

청춘이란 그리 오래 가지 않는 것이기에

마음은, 바람같이 구름같이

육신은, 오늘이 내일같이

푸르름 있을 열심을 다해 살아보라고

 

오늘 몸에 안긴 가을바람도

내일이면 다른 바람이 되어

오늘의 나를 외면하면서 스쳐가더라고

누가 날더러 무슨 재미로 살아가느냐고 묻는다면

오늘 삶에 은유를 바람과 노래하고

구름과 노래하는 문학이 나를 잡아주었기에

내가 흘릴지라도 행복을 노래하는 이유라고

 

시를 짓는 인생의 참살이라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세상에서

가슴과 가슴이 만들어내는

목련꽃 같은 청초함으로 서로를 다독일

생의 숲이 풍요로울 텐데,

 

일곱 난쟁이 미소 짓는 인간의

백설공주가 단잠 자는 아름다운 인간의

비로소 세상은 같이 청명할 텐데,

속에서 그대도 나도

꽃피고 새우는 바람이 노니는

고요의 숲에서 단잠을 이룰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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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정혜진

호주한국문학협회정회원

 


이민생활 8년차에 영어가 늘지 않는 것도 속상한데 능숙하던 우리말마저 어눌해지니 더 서러운 일이다.

한창 영어로만 대화한다고 깝죽대던 몇 년 전,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하나생각난다. 한국에 있는 여동생과 통화를 하다가 당연히 생각나야 할 단어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빨래를 해주는 기계 이름이 뭐였더라?''

동생은 "언니, 설마 세탁기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야? 진짜 병원에 가 봐야겠다''라 하며 걱정을 했다.

치매에 걸린 것처럼, 내 머릿속 우리말 주머니는 점점 작아지고 보니 사자성어나 속담 같은 건 이미 반은 지워진 상태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속담을 하나씩 꿰기 시작했다.

속담은 옛날 사람들의 생각과 지혜가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간결하면서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속담이 지나치게 과장될 때도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는 우리네 조상들의 재치가 아닐까

특히나 절대적인 교훈처럼 여겨지는 속담 같아도 서로 되는 속담이 존재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유연한 사고를 하는지도 증명해준다.

 

예를 들어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을 들으며 백짓장을 맞들면 찢어지기 밖에 더할까 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을세라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속담으로 묘하게 균형을 이뤄준다. 이러한 예는 의외로 많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에도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라는 반대속담이 있다.

또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에서도 그러면 일찍 일어나는 벌레가 부지런을 떨다가 빨리 죽는 것 아닌가 라며 반기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서양속담 ' 치즈는 두 번째 쥐가 먹는다' 와 일맥상통한다. (첫 번째 쥐는 치즈를 향해 가다 쥐덫에 걸리고 마니까 말이다.)

 

피해야 할 속담들

이렇게 속담을 살펴보니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속담들, 되도록이면 쓰지 말았으면 하는 속담들도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로는 남녀 차별적 속담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번 패야 한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다' 등의 속담들은 현대에 적용해서 함부로 쓰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특히나 호주 여성 앞에서 이 속담들을 말했다간 스트라스필드에서 본다이 비치로 바로 날려갈 수 있음을 (^^) 명심하길 바란다.

 

두 번째로는 장애인 관련 속담들이다.

'앉은뱅이 용쓴다' '언청이 아니면 병신이라 할까?'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등 반려인 들의 신체적 불편함을 조롱하는 듯 한 표현으로 속담을 인용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 이다.

 

세 번째는 바로 미신적 속담이다.

이 미신적 속담은 알게 모르게 분명한 근거도 없이 우리 생활에 많이 스며들어 있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

-밤에 휘파람 불면 뱀이 나온다.

-다리 흔들면 복 떨어진다.

-여자 말띠, 뱀띠, 용띠는 팔자가 세다.

-머리 위 가마가 둘이면 시집장가를 두 번 간다.

이 외에도 얼토당토 않는 미신속담으로 우리의 사고를 구속하는 것 보다는 '이런 행동은 보기 좋지 않으니 안 하는 게 좋겠다'라는 말로 대체되었으면 한다.

 

또한 좋은 속담도 잘못된 적용으로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를 조심해야 한다.

가령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뚝배기 보다 장맛' 들의 속담을 사람의 외모에 빗대어 말하는 것은 상대방의 기분을 언짢게 할 수도 있다.

'배운 게 도둑질'을 예로 들어서 자신을 정당화 하는 것보다는 희망을 갖는 긍정적 마인드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못 오를 나무는 사다리 타고 오르면 되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지만 사람은 솔잎만 먹다가 죽는다.

 

우리는 환경과 신분, 성별에 제약을 받았던 조상들과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속담들을 지혜롭게 사용함으로 생각을 구속하지 말며 좋은 속담들을 보존하는 노력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모님들의 2세들을 향한 모국어 교육 안에 속담들도 포함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초등학교 때 '낙동강 오리알'의 정확한 의미를 몰라 아버지에게 여쭤본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는 재미있게 그 속담을 풀어주셨다.

"아빠는 어릴 적 낙동강이 보이는 작은 마을에 살았어. 아침이 되면 사립문을 열고 '워이'하고 외치며 오리를 내보내면 오리는 알아서 강가로 가서 하루종 헤엄도 치고 모래장난도 하고 논단다. 그러다가 오후가 되면 아빠는 오리를 몰아서 집으로 돌아와야 하지.

집으로 오면 할머니는 꼭 아빠를 한 번 더 강가로 내 보내 셨단다. 오리들이 아무렇게나 낳은 오리 알들을 주어와야 하기 때문이야.

혹시나 뱀이 가져가면 안 되잖니. 엄마한테까지 버림받은 오리 알이 얼마나 불쌍하니. 그래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라고 하는 거야."

지금도 오리들만 보면 낙동강 오리알을 줍는 어린 아버지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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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산 정병만

<>호주한국문학협회 기획이사

잊으려 해도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은 그 사람

행여 잊어질까

되돌아 생각해봐도

생각은 지워지지 않네

바람결에 팔랑이는

떡갈 나뭇

사람 좋아하던 갈잎노래

날 애태우던 휘파람소리

이제는 흘려간

한 조각 구름처럼

자욱 자욱 저며 드는

이 마음

차라리 슬프다고

슬피 운다고

하얀 미소 깨물며

허공 속

갈바람에 날리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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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마야 윤윤행

<>호주한국문학협회 정회원

 

“우리가 한 평생 살아가면서 자신과 마음이 맞는, 내 마음과 같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아니, 아마 절대 불가능할거야, 왜냐면 이 우주에 ‘나’는 오직 유일한 존재니깐.”

“서로의 성향,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날 수 있어도, 내 맘과 똑같은 사람은 결코 만날 수 없을 거라고.”

대답을 들은 그녀의 두 눈은 설마, 설마,...... 믿고 싶지도, 그렇게 되면 안 되는 데라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쳐다본다.

어릴 적부터 일찍이 죽음의 문턱을 오르내린 그녀라 삶에 대한 인식도, 인간관계의 대처 능력도 사뭇 다르다.

우여곡절 끝에 살아났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고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남들 보다 더 열심히 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남들이 좀 쉬어가라고 조언하지만, 부지런함이 자신의 힘이라고 말한다.

운 좋게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을 해서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아 지금은 어엿하게 아들과 딸은 대학생이 되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착하다는 말을 듣고 사는 게 내심 얼마나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 아닌지 모른다며 만족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이민을 와서 보니 모든 게 낯설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뭐라도 일은 해야겠고, 말은 안통하고, 암담하던 차에 한국에서 일 한 경험으로 그래도 장사가 낫겠다 싶어 가게를 차리게 되었노라고.

그나마 장사는 자신 있다고 생각해서 겁 없이 가게를 준비하는 동안, 믿고 일을 맡겼던 사람들에게 계약사기도 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시간은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며 한숨 지며 고백한다.

한국의 일 때문에 남편과 함께 올 수 없어 자동 기러기 가족이 되어, 해가 거듭될수록 남편의 빈자리는 너무 컸고, 일 년에 두 세 번은 서로가 바다 위를 날아 견우와 직녀처럼 만나지만, 예고 없이 수시로 들이닥치는 허탈감과 외로움에 그녀도 이제 많이 지쳤노라고 말한다.

시드니에 발을 디딘 순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 여겼기에 별 생각 없이 아이들 영어만 좀 되면 가야지 라는 마음으로 어떡해서라도 견뎌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문을 걸어가며 6년을 잘 버텨내었다는 그녀.

가게에 찾아오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손짓발짓으로도 모자라면 에라 모르겠다! 호탕하게 웃어버리면 그만이었다고........ 정말이지 황당하고 곤란한 때도 많았지만, 사람과 사람, 감정과 감정이 오가다보니 손짓발짓, 표정으로 적당히 해결되었다며, 지나간 세월이 떠올랐는지 얼굴에 어둔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녀가 그나마 좌충우돌의 이민기를 6년 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호주의 천연 자연과 복지 환경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녀 또한 몸이 불편한 관계로 고국에 비해 실제로 호주에서 장애복지및 노인에 대한 배려와 편리시설이 월등함을 피부로 직접적으로 느꼈을 테니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몸 안에 보조대가 끼워져 있고, 자신의 뼈가 아닌 쇠붙이를 끼우고 살다보니 때때로 어깨와 허리, 다리가 쑤셔 죽을 맛이라 잠자기 전에 술을 한 잔 마시고 자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라 했다.

우연히 찾아든 낯가림 심한 또 다른 이방인 아줌마와 유학 왔다 호주가 좋아 영주권을 받고 진득하게 눌러 살고 있는 노처녀. 모두가 불혹을 훌쩍 넘긴 여자들이 만났다.

이방인이라는 비슷한 처지가 서로의 말문을 터이게 했고, 그녀들이 인사를 나누기까지 2년이 걸린 셈이니 어지간히 거리를 두고 지켜봐 온 셈이다.

할 말도 많고 가장 성격이 활발한 노처녀 아가씨는 현지인들을 상대로 일을 하다 보니 직장에서 받는 문화적 박탈감과 소외감은 세월이 지나도 좀체 간격이 좁혀지지 않아 억지웃음을 지을 때가 많다보니 스트레스가 알게 모르게 쌓인다고 한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스트레스를 털어내지 않으면 우울증으로 괴롭기에 마음 맞는 사람과 허심탄회한 대화가 필요해서 온다며, 가뭄에 콩 나는 것 보다 더 힘들게 만난 날, 반가움에 얼른 가게 구석진 자리에 신문지를 깔고, 냉동고에 있는 삼겹살을 꺼내 소주잔을 건네 든다.

우리의 가게 주인은 신이 나서 외국 손님들이 와도 싱글벙글 새 젓가락을 꺼내 삼겹살 한 점 집어 손님에게 건네기도 하고, 맛있으니 맛보고 가라고 서툰 영어로 살갑게 굴면, 그 중에 한 두 명은 한국 음식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Good’ 하며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손을 흔든다.

좁고 구석진 자리라 사람들의 눈길을 피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 그래도 음식 냄새 풍기는 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까칠하게 굴면 아~~ 괜찮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제친다.

 

오랜만에 그녀들과 유쾌한 이야기에 눈물 나도록 웃다보면,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긴 지금 이 시점은 새로운 뭔가를 찾아 나서기보다 그동안의 삶의 지혜를 모아 안정된 삶의 틀을 유지하고 살아가야 할 때란 생각이 문득 든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지점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생의 모진 파도도 만났고, 철썩 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배신감도 맛보았고, 좋은 인연과의 기쁨도 슬픔도 어느 정도 감내한 세월이었기에 지나온 삶의 경험을 잘 조합해 보면 사람과의 관계, 사회적인 관계, 복잡한 관계에서 지금쯤은 마음이란 걸 능숙하게 조율할 줄 아는 그 때가 온 것이라고.

그래서 남은 절반의 인생을 위해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비록 다리도 제대로 펴기 힘든 비좁고 누추한 곳에,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앉았지만, 더없이 아늑한 마치 고향집 구들방에 앉아 ‘호호 하하’ 세상 걱정 없이 웃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 든다.

다음날이면 어제의 옷은 벗어버리고, 오늘의 새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고, 새 마음으로 하늘, 구름, 태양, 바람, 사람들을 만나 해맑은 웃음과 희망을 쏟아내길 간절히 바래본다.

갓 내린 커피 향을 음미하며 스텐 톨러의 <행복의 절반 친구> 중에 나온 구절을 소리 내어 읊어 본다.

 

“사람은 볶기 전의 원두 같은 존재다

저마다의 영혼에 그윽한 향기를 품고 있지만

그것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화학반응이 필요하다.

그래서 볶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고,

어울리면서 서로의 향을 발산하는 것이다.”

 

서로가 잘 어우러져 향을 발산하고 가장 적절한 맛을 낼 수 있도록 신뢰하는 마음, 배려와 사랑의 기술을 배워 나간다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롭고 맛있는 커피 같은 친구와 함께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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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마야 윤윤행

<사>호주한국문학협회 정회원

 

올 시드니의 여름이 괴이하다 싶었는데 60년 만에 맞은 이상기온이라는 기사를 읽으며 어쩐지 여름 내내 태양보다 비를 더 많이 봤으니 이상한 현상이긴 하다.

덕분에 시원한 여름을 보낸 것 같아 좋긴 한데 축축한 공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늘어져 조울증을 앓는 사람들도 생기겠다 싶다.

우중충했던 2월에 이어 3월 한 달도 일기예보 그림판이 온통 비구름이라 걱정이 살짝 앞선다.

갑자기 불어난 강수량에 벌써부터 댐 수위에 비상이 걸려 예방책을 마련하느라 NSW 주가 분주하다는  뉴스에 큰 재난 없이 그냥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어느새, 시드니에 둥지를 튼 지 세 번의 여름을 보낸 소감이 남다르다.

주말을 제외한 평일 오전, 운동 삼아 해안산책로를 따라 GAP PARK까지 왕복으로 오간지 3년이 되었다.

땅이 마를 날 없는 요즘, 산책로를 걷다보면 움푹 페인 곳마다 여러 개의 웅덩이가 생겨 지날 때마다 신발이 젖을까,  멈칫 멈칫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물이 가득 고인 웅덩이에서 가끔 잠에서 들깬 잿빛 하늘이 소복하게 담겨 있고, 파란 하늘, 흰 구름, 먹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이 땅에 내려앉아 하나가 된 세상을 보며 평등의 소중한 마음을 배우기도 한다.

수억 년 전 해저였던 바위가 지각변동으로 솟아 육지가 되어버린, 사이사이 흙이 쌓이고 쌓여 펑퍼짐한 땅이 되었지만 바닥에 새겨진 검붉은 물결 모양은 나의 고향은 바다였노라고 말하는 것 같다.

길을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 다정하게 미소를 보내는 사람들, 무뚝뚝한 사람들, 은근히 견제하듯 곱지 않은 시선을 당당하게 비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또한 지나고 보면 작은 행복이고, 낯선 땅에 사는 이방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이라 허투루 넘겨 버린다.

사람들보다 함께 나선 애완견들이 더 살맛나 보인다.

모르는 사람도 시간이 길어지면 친구 되고, 점점 깊어지면 가족이 되어가듯 애완견들도 저들 나름대로 친구를 만나면 그런가보다.

주인이 승용차 문을 열자마자 쏜살같이 초원으로 달려가 허둥거리며 친구를 찾는 폼도, 긴 목을 쭉 빼고, 콧등을 올려 바람의 냄새로 친구를 찾는 모습이 어찌나 애달픈지.

주인과 함께 길을 가다 멈춰 서서 꼬리를 흔들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그것은 친구를 찾았다는 기쁨의 신호다.

동물들의 감정표현은 어떤 이물질도 껴있지 않은 순수함과 사람들의 복잡한 감정과 다른 오롯한 하나의 기쁨, 그대로를 보여주기에 언제나 그들을 만나면 행복해진다.

 

낮에 말짱했던 하늘이 저녁이면 주구장창 무슨 억하심정인지, 부슬부슬 실눈처럼 내리다가 이내 쏴아 쏟아낸다.

아담한 체구에 핏기 없는 누른 얼굴, 퀭한 두 눈에 먹구름이 끼더니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아이들 과자를 사러 나왔을 뿐인데, 아무도 속상한 말도, 면박도 주지 않았는데 마치 어른한테 야단맞아 우는 아이처럼 두 눈이 발갛게 충혈 되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흐느껴 우는 그녀를 나는 오늘 처음 보았다.

그녀처럼 나 또한 우연히 가게에 물건을 사러 왔다가 그녀의 신세 한탄을 들었을 뿐이다.

고향을 떠나 온 자는 어딜 가나 이방인 신세다.

말이 줄어들고, 참을 인()을 가슴에 새겨야 하고 그러다보니 ‘ ......... ’ 말줄임표 안의 ‘한 점’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날이 많아진다.

너무 외롭고 힘들다며, 태국에 있는 부모 형제가 너무 그립다며, 남편 공부 뒷바라지와 두 아이를 키우며 작은 타이 카페를 운영하는 여인은, 이 모든 생활이 너무 힘들어 죽겠노라고, 그동안 억눌렸던 설움이 활화산처럼 솟구쳐 오르는 그녀의 슬픔을 말없이 바라보다, 말줄임표에 갇혀있던 내 안의 담담했던 점들도 덩달아 꿈틀거린다.

한참을 그렇게 가게 주인아줌마의 가슴에 기대어 울다가 부끄러운 듯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녀는 작은 토끼 같았다.

숨 쉬는 동안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살기위한 고통의 덫, 그리고 순환의 고통 속에 서 있는 그녀를 보니 왠지 내 모습이 작아졌다.

 

먼 땅 타국에서 같은 설움에 놓인 현실 앞에서 그녀의 설움이 나의 설움이기도 하고 그녀의 눈물이 나의 눈물이기도 한 동병상련 (同病相憐)같은 것인가 보다.  

 ‘걱정하지 마라. 잘 될 것이다. 돌아서면 이것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인정 많은 가게 주인아줌마가 막걸리 한 병을 공짜로 주자, 이것 마시고 취하는 것 아니냐며, 그럼 내일 일 못한다고 걱정부터 한다.  

순한 술이니 걱정하지 말고, 오늘 밤 남편과 기분 좋게 한잔하고 털어버리고 자라는 주인아줌마의 말에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만큼 속이 후련해졌노라, 연방  고맙다며 손을 흔들고 빗속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등 뒤로 훈훈한 여름바람이 빗줄기 따라 스쳐간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세상이 곱지 않을 때도 많지만, 우리들 어깨위에 짊어진 고단한 삶의 무게가 너, 나 할 것 없이 공평하게 두루 주어졌음을 알기에 서로를 향해 날리던 불평과 미움도 그냥 끈 떨어진 연처럼 허공을 맴돌다 사라지리라 믿는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우산을 쓰고 가로등 불빛에 비쳐 떨어지는 빗방울의 선들을 바라보다 문득 이시영 시인의 ‘사이’ 라는 시에 나오는 지우산을 쓴 노인이 된 기분이 든다.

‘가로수들이 촉촉이 비에 젖는다

지우산을 쓰고 옛날처럼 길을 건너는 한 노인이 있었다

적막하다 ’

가게 문을 나서서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적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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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산

문화공간/문학공간 | 2012/03/07 17:15 |

시인/이산 정병만   

<>호주한국문학협회 기획이사

 

 

모진겨울 

서해바닷바람

서로 사랑으로 부둥켜안고

따스한 봄을 기다리는 

철쭉꽃동산에 올라가니

수리산이 자랑하는 떡갈나무

무수한 세월 속에 궂게 자란 노송

수북수북 쌓인 떡갈잎 밟으며

오르는 산행 

졸졸 흘려 내리는 약수 

타오르는 목을 추기고

풍경소리 들리는 수리사 경내

세상번뇌 훨훨  벗어버리고

맑고 깨끗한 약수처럼 

더불어 함께 살고 살고 싶소 

얼어붙은 개울 

 아래에서 노래하며 졸졸 흐르는 물소리

어름 기둥으로 조각한 조그마한 폭포 

고드름 타고 흐르는  소리

그대 마음을 보는  하다

찾는  없는 얼어붙은 겨울호수

춘삼월을 기다리는 호수를 바라보며

따뜻한 온돌아랫목에 앉아

구수한 뚝배기 청국장으로 배를 채우고

수리산에 설경 다시 보니 이처럼 아름다울 수가,

얼어붙은 개울 녹아 내리는 

철쭉꽃 만개하며

호수가 수양버들 새옷 갈아입고 

춤추는  때를 다시 오겠소

그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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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청파 양광석

<사>호주한국문학협회 운영이사

 

 

1941 12 8 제국주의 일본은 해군과 공군을 동원하여 평화롭기만 하던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여 수많은 미군 군함과 항공기를 격파하고 엄청난 인명을 살상하였는데 이것이 태평양전쟁의 시발이었다.

필자는 태평양전쟁 발발 1 전인 1940년에 충청북도 청원군에 소재한 강서초등학교 (당시는 소학교 또는 국민학교라 불렀음) 1학년 이었다.

다음해인 1941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제국주의 일본은 우리한국(당시는 조선이라 불렀음.) 국민에게 혹독한 압력을 가하면서 농민들이 지은 농산물의 80% 강제로 공출(탈취) 갔으며 솥과 밥그릇을 비롯한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두 빼앗아가서 총포와 전차를 만들었는가 하면 전쟁물자 비중을 차지하는 연료가 부족하자 우리 초등학생들에게 공부는 시키지 않고 1주일에 나흘은 소나무 뿌리를 캐도록 하여 그것을 철가마에 넣고 열을 가하면 거무스레한 기름이 나오는데 그것을 송탄유라 불렀고 송탄유의 생산 책임량을 학교마다 배정하여 배정량은 무슨 일이 있어도 완수해야만 했다.

 

겨울철의 송탄유 생산에 나흘간 동원되고 나면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은 오전에만 수업을 하고 오후 4시간 동안은 학교로부터 2km 떨어진 산에 가서 참나무를 교실 난방(난로)용으로 베어 학생1인당 10kg이상씩을 어깨에 메고 오도록 했고 학년생들은 힘에 부치고 어깨가 부어 쓰러지는데 일본인 선생들이 채찍을

들고 서서 위협을 가했으므로 감히 나무운반을 포기한다는 생각을 수가 없었다.

여름이 되어 모심기 철이 되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모심기에 총동원되었다. 어른들은 거의가 징용이나 징병으로 일할 사람들이 없었으므로 어린 학생들을 동원한 것이다. 초등학교 1-2학년생들은 다리가 짧아서 모심는 논에 들어서면 물이 사타구니까지 차기 때문에 많은 거머리가 발뿐만 아니고 사타구니와 항문에까지 달라붙어 거머리를 떼느라 야단법석을 떨었다. 거기에다 여름철의 따가운 햇볕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집에서 4km 걸어서 학교에 가고 학교에서 평균 3km 가서 6시간 동안 모심기를 하고 7km 걸어서 집에 가야 되니 걷는 것만도 엄청난 피로를 느끼며 중노동을 하는 학생들은 양식부족으로 도시락을 싸오는 학생이 명도 없었다. 인심 좋은 농가에서는 감자를 삶아서 학생당 개씩 나누어 주어 허기를 면했고 그때 감자의 꿀맛보다도 맛있던 같다. 그나마도 없는 농가에서는 굶는 학생들이 안쓰러워 돼지에게나 주는 돼지감자를 삶아 와서 위가 튼튼한 애들만 먹으라고 내놓으면 전체학생이 마다하지 않고 먹고는 시간도 못되어 풀밭 여기저기 주저앉아 설사를 했다.

모심기뿐만 아니고 일요일에는 퇴비증산 운동이라 하여 풀을 베어다가 썩혀서 농사용 퇴비를 만드는데 초등학생마다 4 4m 2m깊이의 퇴비구덩이를 만들어 위에서 풀을 넣고 밟아서 밑으로 내려가며 썩게 하고 내려간 만큼 풀을 다시 베어다 채워야 되는데 풀은 1km 넘는 들판이나 산으로 가야만 있었고 일요일마다 다섯 짐을 해야 되는데 왕복 10km 풀지게를 지고 다녀야 했다.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10km 고사하고 1km 풀지게를 졌다면 쓰러지고 것이다. 그렇다고 당시의 초등학생들의 체력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먹고 혹사당해서 지금의 학생들 보다 더욱 허약한 체질이었으나 제국주의자들의 명령에 불복종하면 학생은 물론 학부모들을 경찰서에서 연행하여 혹독한

고문을 가했으니 혼신을 다해 참고 견디는 도리 밖에 없었다. 이렇듯 육체적 고통으로 학생의 30%정도가 말라리아(초학) 걸려 신음하면서도 책임량은 달성해야만 했다.

더욱 악랄한 정책으로 창씨개명령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창씨개명이란 강제로 우리 한국이름을 없애고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라는 명령이었다. 필자의 이름은 광석 인데 어느 갑자기 미나미하라 사부로라고 바뀌었다. 더더욱 분통터지는 일은 학생들로부터 시작해서 한국민 전체에게 한국말을 쓰지 말고 일본말만 쓰라고 하며 가슴에 국어(일본어)상용이라는 글을 한문으로 써붙이고 다니게 했으니 우리 한국인들은 밖에 나가서는 벙어리처럼 되고 말았다.

 

1944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는 4km 3km지점에 공동묘지 고갯길이 있었다. 걷고 있던 다섯 명의 같은 친구 하나가 색다른 질문을 한국말로 했는데 내용은 방구가 나오려는 억지로 참으면 뱃속에 다시들어가겠는가, 아니면 본인도 모르게 항문으로 새어 나가겠느

?’ 하는 요상한 질문에 다섯 친구 셋은 다시 뱃속으로, 둘은 항문으로 새어나간다고 의견이 분분했는데 대화는 모두 한국말로 이어졌다.

공동묘지 고개에서 내리막길로 접어들 무렵에 빼곡히 우거진 소나무 숲에서 느닷없이 양복 입은 어른 하나가 불쑥 나타났는데 그는 바로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일본인 악질교장 소네다였다.

그는 소나무 숲에 숨겨두었던 자전거를 오솔길로 꺼내 놓으면서 일렬횡대로 서라고 하더니 이를 악물라고 하고는 주먹으로 대씩을 힘주어 때리고 나서 내일 아침에 다시 보자고 하며 수첩에 다섯의 이름을 적고는 학교방향으로 가버렸다.

 

다음 아침 교정에서의 조회시간에 악질교장이 어제 조선말 하다가 나에게 적발된 학생들 다섯 명은 즉시 앞으로!” 하자 다섯 학생은 벌벌 떨면서 명의 학생들 앞에 섰고 교장은 일본인 체육선생 미야다씨에게 이놈들을 주먹으로 다섯 대씩 갈기라 지시했다. 차례로 다섯 대씩을 맞았는데 때리는 소리만 요란할 의외로 크게 아프지 않았다. 체육선생은 일본인이지만은 마음씨가 착하고 평소에 친한파로 여겨지는 사람으로서 사정을 두고 주먹질한 같았다.

이렇듯 고통의 세월은 흘러 필자가 6학년 때인 1945 815 우리나라는 36년간의 압박과 착취에서 해방을 맞게 되고 일본제국주의는 무너지고 악랄했던 일본인들은 몰매를 피해 야밤에 도주하여 인천을 비롯한 한국의 항구에서 일본으로 도망치기에 바빴다.

 

1955 미국유학을 마치고 당시는 항공편이 드믄 때라 여객선을 타고 일본 요코하마에 잠시 들렸는데 일본인들의 생활상이 궁금하여 시내에 들어갔을 번째로 눈에 뜨인 것은 일본여성들 거의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며 호객행위를 하는데 주로 미군들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필자가 일본어를 유창하게 있었으므로 일본인인 어느 호텔 경비원에게 다가가 오랫동안 미국에 살다 와서 일본의 근래 사정을 몰라 묻는 건데 여자들이 저렇게 변했느냐?” 묻자 자신의 애인을 비롯해서 모든 여성들, 심지어는 가정주부들까지도 양부인 노릇을 해서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노라.” 말했다. 말을 듣는 순간 일본인들은 과연 경제동물들 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집과 학교의 거리가 2km 되지 않는데 혼자서 학교에 오고 가지를 못하고 학부형들이 승용차로 통학을 시키는데 이는 한국이나 호주나 마찬가지의 현실이다. 요즘 어린이들에게 옛날 일제 강점기 때는 식량이 부족해서 보리밥도 하루 밖에 먹었노라고 이야기 하면 라면 사다 먹으면 되지 않느냐 철없는 소리를 해대는 아이들이 글을 읽는다면 한낱 소설이라고 웃어넘길지 모를 일이다.

필자가 60년도 넘는 세월의 사실을 글로 쓰는 이유는 일제침략과 우리 조상들의 불찰로 36년간 국권이 짓밟히고 어린것들에게까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지니게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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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City

문화공간/문학공간 | 2012/02/29 16:32 |

남정/이혜

<사>호주한국문학협회 재정이사

 

 

 

 

회색빛 창공에 마음문 가르

바람난 여름 바람 조각난 구름 헤집고

옴비곰비 앉아 미풍에 도래질 하는

짓궂은 햇살과 뒤엉킨 관능의 몸짓에

한낮임에도 길손의 시야는 장님이 되는구나

 

하늘이 찢어놓은 천연기암

주름 자락마다 멍든 세월의 아픔

벼랑 끝으로 토해내는구

 

신이 빚은

장엄한 대열 앞에서 티끌 같은

시간 만이라도 하늘과 땅에 흡입되어

순결한 자유로 출렁이는

속박의 시간은

시위에 실어 화살로 날리고 싶구나

 

스치는 순간들 초침처럼 붙들어

선하디 선한 시간 넘나들

오늘 무량한 즐거움

언저리에 푸른빛 전율로

새겨두고 싶구

 

 

 

 

 

(Lost City)

국립공원 블루마운틴 북부, 올레마이(wollemi Nat. Park)에 위치한 뉸스(Newens)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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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문육자

<>한국수필가협회회원

 

 

호주에서 갖게 17 ()한국수필가협회 해외 심포지엄 낭독의 밤’ 째날 이었다. 전날 한인회관에서 세미나와 심포지엄이 있었지만 ()호주한국문학협회 회원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해서 얘기들을 나눌 있는 시간은 없었다.

그러기에 다음날 만났을 때는 처음인 가슴이 설레었다. 공유할 있는 언어가 있고 감정이 있으며 당사실처럼 풀어낼 이야기들이 많으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남의 장소는 한인(韓人) 중국인들의 상가가 즐비한 동네 이스트우드에 자리잡은 아리산이라는 음식점이었는데 건너편 학교 마당에는 보랏빛 자카랜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들은 여름을 알리는 꽃에서 고향을 느낀다고 했다. 보라색이 주는 몽환 같은 이미지 탓이리라. 어느 하나에도 고향과 고국을 결부시키고 싶지 않으랴. <버리고 간들, 쫓겨 간들> 어찌 잊겠는가. 탯줄인데...

낭독의 밤이었지만 귀담아 음미하기보다는 말이 고픈 사람들이라 이야기 나눌 시간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사회자는 어색하지 않게 작품 낭독을 적당히 잘라 버리고 자유로운 대화의 시간을 갖게 했다. 테이블마다 고국의 문인과 현지의 문인들이 섞여 앉은 탓에 이야기꽃은 자연스레 만발하게 되었다.

흥을 돋우는 K수필가의 멋들어진 () 와인만큼이나 취하게 만들어 대청마루에서 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같았다.

 

그들은 질곡의 세월이든, 글로벌 시대에 놓여 있는 현재의 상황이든 모국어로 자신의 정서나 사상을 유려(流麗)하게 표현할 있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모국어로 표현할 있는 문학이 그들에겐 없는 위로였다.

타향의 하늘, 일터에서 정신 없이 일하다 느끼는 배고픔 같은 갈증. 만삭의 아낙이 쉬이 몸을 풀지 못할 때의 안타까움처럼 목젖에 걸려 있는 언어들을 뱉어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문학의 여정이 쉽고 평탄한 길이 아니기에 함께 풀어야 공동의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타국이기에, 힘이 되어 단체나 활동무대가 좁은 것이 애로였다. 이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문학의 길로 들어선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이역의 땅이라면 호주라는 나라가 아니라도 마찬가지인 같았다. 캐나다로 이민 친구도 그러했으니... 친구에게 보내려고 글을 생각했다.

무던한 삶에 응석 부리듯 / 그대는 떠나갔지

생활의 옹이 어루만지며 / 마음밭에 심어 육사의 청포도 대신

반액대매출의 사과나무를 사다 심으며 /자유를 키우는 친구여

국어 선생보다는/ 슈퍼마켓 여주인이 수월해 보이건만

모국어가 저리도록 마려워 / 괴고 앉아 이역 이야기

굽이굽이 말아 보낸 친구여......

친구는 말이 마렵고 고프다고 했다. 그러던 친구는 새록새록 새롭게 다가오는 모국어로 시집을 보내왔다.

 

호주에 있는 그들도 그랬다. 모국어로 꽃피우는 문학, 문학의 전령사가 되어 우리의 혼을 이국의 땅에 심을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었다.

꿈의 바탕은 무엇이었을까. 유년이었다. 아니 고국에서의 눈물이었다. 펼치고 싶은 날갯짓이었다. 날갯짓의 시작은 구절양장의 아픔과 시름과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문을 열었지만 이젠 그리움에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절제된 망향의 정을 희망찬 내일의 바탕으로 삼아 모국어를 값진 문학으로 꽃피우고 있었다. 격랑의 세월 속에서도 이어갈 호주에서의 ‘한국문학’을 위해 그들은 한마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역에서의 삶이 만만치 않으니 속에서 문학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들의 방문은 한국수필의 현주소를 알림에도 있었지만 그들이 어려움 속에서 연면(連綿) 우리문학을 이어가는 역할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는지도 모른다.

 

손에 들려진 ‘호주한국문학’(통권 4)에는 그들의 자부심처럼 한국의 얼을 지키는 순수문학지라고 씌어 있었다. 그것은 속에서 캐어낸 보석들이며 그들은 바로 정련사(精鍊師)였다. 우리의 문학이 그곳에서 튼튼하게 뿌리내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우리들의 대화를 끊을 만큼 소란 떨듯 울어대는 새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라면 쌈질이라도 한다고 느낄 만큼 요란했다. 새의 이름을 물었더니 저녁이면 귀소본능으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시끄럽게 재잘대는 ‘진홍잉꼬’란다. 온종일 일어난 일을 그들은 노래로 읊고 있었다. 호주에서의 한국문학이 굳건히 자리 잡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마음을 노래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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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문화공간/문학공간 | 2012/02/07 15:08 |

시인:김은희

<>호주한국문학협회 총무위원



블루 마운틴 암벽처럼

눈감고 귀 막아

등지고 섰다 해도

끝도 없이 불어오는 바람

내려앉은 가슴 이려나

 

열 번의 거듭 을 찍어내도

꺾어지지 않는 이기의 나무

깊게 내린 욕심의 뿌리 탓인가

 

싸리비 자욱마다

먼지처럼 남아 쓸려지지 않는 욕망

지문처럼 늘어붙어 악취를 풍긴다해도,

어찌할 수 없다

 

우린 천사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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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한판암
                                    (경남대학교
교수)

 

상서로운 서기를 내뿜는 흑룡이 새해의 문을 열어 드디어 임진년(壬辰年)의 찬란한 서광과 돋을 볕이 온 누리에 충만한 희망찬 아침이다. 예로부터 용(dragon)은 만물의 조화, 벽사(辟邪), 수호의 재능을 두루 겸비한 영물(靈物)로 여겨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는 현실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동물을 비롯하여 상상의 세계에 온갖 동물의 능력이나 재능을 두루 발췌해서 합성하여 창조된 영험한 신물(神物)이다. 영물인 용의 해에 꿈과 희망으로 설레는 봄이 저만치 다가오는 계절이다.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일 년의 계획은 봄에 한다고 했다.

큰 꿈과 푸른 희망이 하늘로 치닫는 욱일승천의 기상이 온 누리를 뒤덮은 흑룡의 해에 대춘부(待春賦)를 생각한다. 겨우내 잔뜩 웅크리고 새봄을 기다리던 옛 등걸에 움이 트고, 나뭇가지에는 새순이 돋아나며, 마른풀 무더기엔 새싹이 수줍게 얼굴을 내미는 환희의 계절이 기다려짐은 산천초목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본바탕에서 궤를 같이 하리라. 지고 지순한 삶의 가치를 지향하는 한편 문학적 성취와 순수한 영혼을 갈구하는 뜨거운 가슴의 동도(同途) 제위에게 매일 매일이 새롭고 알토란 같은 결실 거두는 보람과 행운이 넘쳐나는 한 해가 되길 빌고 또 빈다.

 

순리와 억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온몸으로 그 진솔한 차이를 배워가는 터득과 깨달음 과정이 바로 우리 범인들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배한다. 그런 편린과 흔적에 세월의 더께를 감출 수 없다하더라도 달관이나 관조에 이르려면 아직 까마득한 모양이다. 세상 경험이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생의 모퉁이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생뚱맞은 난제나 곤혹스러움이 앞을 가로막을 때마다 평온한 마음이나 웃는 낯으로 바라 볼 자신이 도통 없다. 언제쯤이면 슬기롭게 극복하여 무애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현자가 아닐지라도 동행하는 모든 문우들이 하늘의 이치인 천리나 자연의 섭리를 제대로 꿰뚫어 통섭(通攝)에 다다라 거리낌 없이 상호 소통하는 삶의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치열한 삶의 이치를 생각해 본다. 가을에 씨를 뿌리는 보리와 밀을 이른 봄에 파종하면 이삭이 제대로 출수(出穗)하지 않아 낱알이 영글지 못해 결국 폐농(廢農)에 이른다. 이들은 가을 들녘의 밭에 파종되어 겨우내 기온이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땅이 얼고 녹기를 되풀이 하며 끝없는 단련과 혹독한 한파를 거뜬히 이겨내며 생물학적으로 형질이 변형되어야 결실에 이른다. 보리나 밀이 일정한 기간 동안 저온 상태를 경과해야 결실이 가능한 형질로 변형되는 현상을 버널리제이션(vernalization : 춘화처리(春化處理))이라고 한다. 이런 자연의 섭리는 인간의 삶에도 여지없이 같은 맥락으로 적용되리라. 삶에서 인고의 세월이나 모진 경험은 더더욱 튼실하고 알찬 얻음이나 깨달음의 계기가 되어 엔간하면 되레 약이 되는 경우가 허다함을 우리는 명백히 기억하고 있다.

 

예로부터 병이 피부에 있을 경우 ‘고약’으로, 혈맥에 자리 잡은 경우는 ‘침’으로, 더욱 진전되어 위장에 이르렀을 경우는 ‘탕약’으로, 그보다 더 심각해져 골수에 스미면 ‘귀신도 손을 쓰지 못한다.’고 했다. 개인의 건강, 나라의 병폐, 크고 작은 모임인 각종 단체의 건전성도 같은 이치이리라. 이런 연유에서 순수한 정신과 문학에 대한 불타는 열정을 바탕으로 일궈온 문학의 밭에 문제의 씨앗이 잉태될 기미가 엿보이면 즉시 바로잡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래야 튼실한 재목으로 건강하게 성장을 거듭해 세세연년 빛날 문학계의 기념비로 자리할 기틀을 다짐과 동시에 힘차게 굴기(崛起)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판에 박은 듯 한 문구나 진부한 표현’을 뜻하는 클리세(cliche) 같은 말이지만 논어(論語)에서 이르는 내용을 음미하며 올 한 해 삶의 자세와 각오를 다지면 어떨까, ‘절실하게 묻고 구체적으로 생각하라.’는 의미의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의 철학을 생활의 바탕으로 삶을 영위한다면 원하는 바를 너끈하게 이룰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렇지만 스승이라 해도 가르침이 없으며, 도반이라 하더라도 말을 극도로 아끼는 경우처럼 스스로 깨우치고 터득하라는 뜻에서 방임하고 묵언으로 동행하는 모양새 그대로 올곧게 전해지길 소망한다.

 (2012년 1월 1일(壬辰年 元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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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나루/한광택
<사>호주한국문학협회회원





임진년, 비상(飛上)과 희망을 갖고

육십 만에 찾아온

용중의 용() 흑룡(黑龍)

인왕산 기슭에 앉아 한반도

분단의 서러움에 기함(氣陷)을 지른다.

통일을 위하여 애쓴 흔적이 많건만

아직도 풀지 못한 대한민국

지도상에 그려진 반동강난 모습

애처롭기만 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통일의 열망은 같은 밟고 사는

백의(白衣)의 민족, 언어를 쓰고

말하는 우리가 아니던가!

통일의 염원 사철마다 피어나고

까치 까치 설날의 노래

제주도에서 두만강까지 울려

아프고 서러운 국치민욕(國恥民辱 )

씻을 날 어서 왔으면.

 

통일 , 해결 과제두려움인가!

배고픈 동포 보듬어 사상을 뛰어넘고

전쟁 없는 평화의 통일.

상상만해도 콧노래 절로 피어난다.

세계를 향해 끝까지 관철시키는

용의 힘으로, 통일이여! 통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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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문화공간 | 2012/01/16 15:11 |

시인, 수필가: 나향/이기순
                 <>호주한국문학협회 회장

 

아침선바람은 어차피 꿈도 꾸지 못하는

생존방식에 젖어있는 나,

하지만 영혼의 촉수는 허공을 더듬는다.

자연을 품고 살아가는 생명체에게

족보가 있다는 것과 살아 숨쉬는 그 산뜻한 서열

맨 앞줄에 등재되지 못하는 설움

허공은 알 것이기에,

 

오후산책이라도 좋다.

촉수에 힘이 빠져선 살아갈 수 없는 이국(異國)

그래, 어디서 살면 어떠랴,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지…….

당신이나 나나 무엇을 먹었느냐,

그게 무슨 문젠가,

변기에 쏟아내는 건 매한가지지 

이방인, 어눌한 언어쯤이야 문제될게 없지 않은가,

눈빛으로 표정으로 시간을 색칠하는 힘있으면 되는 게지 

대한민국

단단한 뿌리 수긍(首肯)의 무기로 오늘도 배기 중이기에  

언어의 발톱에 긁힌 위장에서 피가 흐른다 해도

맹수로 변신해 춤추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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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사랑

문화공간 | 2012/01/16 15:10 |

수필가: 김윤숭
지리산문학관 관장
한국수필가협회 운영이사
대전대학교 철학과 객원교수

 

오스트레일리아의 나라이름 한자표기인 호주를 생각해본다. 호걸 호자에 대륙 주자이다. 중국에서 붙인 나라이름은 옛날에는 중화사상으로 사방을 다 오랑캐라고 표기하였다. 동이, 남만, 북적, 북호, 서융 등등 뭉뚱그려 사이, 이적이라고 하였다. 중국이 중화사상으로 사방의 이웃 민족, 자기들 입장에선 잠재적 침략자 민족을 이적이라고 멸시하였지만 지금은 56개 소수민족 운운하며 다 중화민족이라고 포용하고 포섭하고 소유하려고 한다. 사방에 사는 가까운 나라, 이민족은 다 이적이라고 하더니 먼 곳에 사는 구미 제국은 다 좋은 나라이름을 붙이고 존중하였으니 그들의 병법 원교근공책을 쓴 것인가,

중국에서 구미 열강을 가리키는 영국의 영자는 영웅이라는 뜻이고 법국(불란서)의 법자는 법률이고, 덕국(독일)의 덕자는 도덕이라는 뜻이고, 아메리카의 미국은 미인이라는 뜻이고 호주(중국어로는 오대리아)의 호자는 호걸이라는 뜻이다. 물론 다 음역이지만 중국인들의 특징대로 음역하되 문자의 뜻을 중시하여 좋은 의미의 문자로 음역하는 법칙에 맞게 한 것이다. 우연히도 영웅, 호걸은 흔히 한 문구로 쓰이는 말인데 영웅 영자인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지금은 영연방인 호주는 호걸 호자로 영웅 뒤에 오는 말이다.

 

호주가 백인만 이민자로 받아들일 때 백호주의 운운해서 처음 들었을 땐 무슨 흰 호랑이만 좋아하는 나라인가 했는데 백인만 인간 취급한 호주란 뜻이었다. 지금은 다민족 국가로 바뀔 수밖에 없는 세계 추세인 것이다.

호주의 호자가 호걸이라는 뜻이어서 미국이나 영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좋은 의미의 나라이름이기 때문에 호감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언뜻 생각하면 호걸이 많은 나라가 아닐까 하였다. 맹자가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가르치면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했는데 영국에서 영재를 얻어 가르치고 호주에서 호걸을 만나 벗하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그런 기대로 호주로 날아온 것이다.

호주로 날아왔다. 시드니, 골드코스트 등을 둘러보았다. 호주대륙은 일주하지 못했으므로 광활함을 절감하진 못했으나 넓기는 넓은 모양이고 청정 지역과 소득 수준 높은 부국임은 느낄 수 있었다. 가이드를 잘 만나 그의 애국심을 느낄 수 있어 더 좋았다. 그는 초교 시절 이민 와서 호주 국적이라서 한국 군대에 갈 필요가 없었으나 공군대령 출신인 그의 부친의 권유로 입대하여 병졸로 제대하고 그 인맥으로 한국에 오면 소주 친구가 있다고 하였다. 군대 간다고 해놓고 미국으로 도피하여 지탄받는 가수가 생각났다.

 

꼭 군대 가야 애국자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법망을 악용하여 군대를 회피하는 것은 지도자의 자질로는 부족한 것이다. 그 모든 병역 문제를 원천 방지하기 위해서는 군대도 전투 군대와 사회 군대로 나누어 모든 한국 남자는 무조건 다 군대에 가는 국민개병제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본다. 장애인이든 병자든 다 군대에 입대하여 사회 생활하듯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대로 군대에 기여하는 역할분담을 하게 해야 군인정신을 함양하고 병역 문제가 깨끗해져 정치인들의 도덕성 시비가 없어지고 병역범죄 등이 사라질 것이다.

골드코스트의 가이드는 자신이 운영하던 점포에 강도가 들었는데 소수인종이었다며 인종문제에 민감한 사람으로 한국의 무조건적인 소수인종 우호정책을 비판하였다. 선진국이 되면 본국민은 일 안 하고 이민자가 힘든 일을 도맡아 하게 마련으로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된 것이다. 오히려 자부할 일이지만 그로 인해 선진국에서 발생하는 인종문제도 고려하여 전철을 밟지 않도록 심모원려해야 할 것이다.

호주가 육이오 때 자유세계를 위하여 우리나라에 파병한 얘기라든가, 50년간 지하자원을 우리나라에 싼값에 공급하기로 했다든가 2차대전 때 잠깐 일본의 침략을 받고 당한 고통이라든가 일본위안부 문제에 동병상련으로 참여하는 얘기 등을 듣노라니 호주에 우호적이 될 수밖에 없고 호주를 저절로 사랑하게 된다.

 

호주에 살다 간 소설가가 쓴 책이 <재미없는 천국 호주, 재미있는 지옥 한국>이라고 하였듯이 호주에서 웬간히 살면 여유롭고 한가하고 대자연을 만끽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역동적인 한국인으로는 심심하고 성취감이 없어 재미없을 것 같은 느낌이 공감된다. 그래도 청정하고 한가로운 모습에서 호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호주인에게 안 좋은 일을 당하면 호감은 싹 사라지겠지만.

그런데 가이드는 여행사 소속이라서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외화벌이를 해야 하는 입장인 것은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부국이나 빈국이나 매한가지였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에서는 라텍스를 판매유도하고 호주에선 양모나 빌베리 등 내추럴메디슨을 판매 유도하여 왕창 팔았다. 한국의 돈이 호주로 들어가는 것이다. 호주의 돈이 한국에 들어와 한국을 살찌워야 하지 않나 싶다. 정반대이니 호주의 한국인은 본국의 한국인의 주머니를 털어 먹고 사는 것이다. 중진국인 한국이 선진국인 호주를 먹여 살린다. 미국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거기 비하면 삼성, 현대, 엘지 같은 대기업들은 외국에 물건 팔아 한국을 먹여살리는 고마운 존재이다. 한국이 세계 십대경제대국이 된 것이 그들의 덕이 아니겠는가, 그런 대기업이 없는 북한은 얼마나 잘 사는가. 어찌 북한 찬양자가 있는지 감이 안 선다. 비록 나는 대기업에게 당했어도 대기업을 증오하진 않는다. 엘지죽염치약이 인산죽염치약의 상표권 취소소송을 배은망덕하게 제기하여 초심에서 우리가 승소하고 재심 특허법원에서 지고 대법원에서 다시 승소하기까지 수 천 만원의 소송비용과 시간과 심려 등 물심양면의 손해가 어디 적은가, 그래도 대기업은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근간이기 때문에 미워도 다시 한번인 것이다.

 

이역만리 평화로운 동네에서 미움이라니 마음을 평화로이 다스린다. 차창 밖을 본다. 시드니의 공원과 거리에서 간혹 보랏빛 꽃이 무성한 나무 자카란다가 보인다. 뉴질랜드에서 익히 보아온 것이라 새삼 신기하진 않았지만 여기서 다시 보니 반가웠다. 북반구에는 없는 이국적인 꽃나무라 몽환적인 느낌이 든다. 한국에도 저런 보랏빛 꽃나무를 심어놓고 감상한다면 역시 몽환적인 느낌이 들까, 몽환적인 외국 여행 기분으로 마냥 살 수는 없으니 정신을 두수하여 현실로 돌아와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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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수필가: 香里/윤영남 교수

숭실대학교 평생교육학 박사

 

한국의 가을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높고 푸른 하늘을 보고 싶지만, 오늘따라 잿빛 하늘이다. 문득, 호주의 빠삐옹베이에서 바라 본 높은 절벽, 하늘과 맞닿은 해변의 절경, 내가 어설프게 한 마디씩 배운 원어들을 중얼거려 보고 싶었다. 본다이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 울릉공 (바람이 머문 자리), 이런 말들이 어느새 추억 속에서 모양을 드러내듯 꿈틀거렸다. 여독으로 잠시 덮어 두었던 기억들이 선명한 그림처럼 고운 색채가 호주의 하늘로 나를 유혹했다.

벌써 물살을 가른다. 파도 위에서 곡예를 하는 환상적인 써핑의 자세가 돋보인다. 가르는 물결이 하얀 길을 만들어 내는 관경이 참으로 경이롭다. 저렇게 집채보다 큰 파도가 밀려와도 걱정이 없으니, 마치 바다를 아득하게 감싼 해변이 써핑의 천국 같다. 써핑을 하기에 아주 최적의 지형이 아닌가, 윈드써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바다를 가르는 듯한 긴 해변을 나는 듯 높이 뛰어 올랐다가, 다시 중심을 잡곤 했다. 롱비치의 아늑한 76km 해변을 잠시 걷다가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제야 비로소 골드코스트 (Goldcoast)는 바다가 줄 수 있는 최적의 풍성함을 맘껏 누릴 수 있는 곳임을 알았다.

 

산호초 가루로 형성된 미숫가루처럼 고운 모래의 감촉, 하늘과 바다색깔이 일치하는 청명함은 여행객들의 피로를 풀 수 있는 감탄사를 연발시켰다. 모래사장 옆으로는 언제나 바비큐를 누구든지 해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고, 잡상인은 일체 출입이 통제된 곳이다. 맨 발로 백사장을 걸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모래의 감촉은 말없이 통하는 내 육신과 자연의 속삭임이 깃든 밀어였기에…….

블루마운틴에서 세 자매 바위를 보면서 구 천년 전의 역사를 거슬러 지형의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바다였던 곳인데, 지금은 기암절벽을 이룬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스스로 허물을 벗는 나무, 차츰 자라면서 껍질을 벗고, 수액을 전달하는 통로가 중심부에 있기에, 웬만한 산불이 나도 타지 않는다는 유칼리투스 나무가 밀립지대를 이루었다. 하늘빛과 바다색이 일체감을 이룬 곳이라 특이한 블루마운틴 이란 이름이 붙여졌단다. 자연 그대로 우거진 휴양림 속을 걸으면서 부럽기도 했다. 또한 우리나라 야산에서도 자주 보던 낯익은 고사리 나무를 보고 마치 친정 큰아버지를 본 듯이 반가웠다. 한 아름이 넘을 정도로 큰 고목이 된 고사리나무는 분명 기후의 혜택이리라.

 

어느 나무와 식물도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이 필요할 것이다. 적당한 기온과 햇볕, 사계절이지만, 겨울과 여름은 각 한 달씩이니까 얼마나 좋은 기후가 되겠는가. 우리가 화분으로 키우던 벤자민 나무가 공원의 거목으로 넓은 그늘을 만들었고, 각종 식물들이 너무도 싱그럽게 자라는 모습이 직사광선과 더불어 청정해역을 뽐내며 우리 일행을 눈부시게 맞이했다.

금번 해외문학 심포지엄 참석을 위해 호주(AUSTRALIA)에는 처음으로 방문했다. 시드니 공항에 내릴 때부터 타국에서 느낄 수 없는 불안감보다 여유로움을 느꼈다면, 마중을 나온 호주문학회 L회장님 내외분이 우리 일행을 무척 반갑게 맞아 주셨기 때문이다.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이민자로서 사업상 쌓인 업무도 접은 채 많은 교민들이 우리와 함께 한 시간이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심포지엄과 낭송회가 개최되는 공식적인 행사의 이틀 동안 서로 가슴에 곱게 접어둔 향수와 조국애를 서리서리 풀어내며 감사와 감동의 도가니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내가 등단 후, 수필가로서의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지난 이십여 년 동안 내놓을 작품다운 수필이 없음에 부끄러웠다. 하지만, 나의 수필쓰기에 대하여 발표할 시간이 주어졌다.

나의 졸작 중에 <숭늉>을 쓰면서 내 마음 들여다보기와 내가 스스로 느꼈던 욕망의 빛깔을 짧은 고백으로 마무리를 했다. 나의 수필작법이란 내세울 것 하나도 없기에, 그냥 꾸밈없는 무채색의 숭늉을 대비시키며, 숭늉처럼 어떤 조미료도 가미하지 않고 자기다움으로 덕망을 갖춘 구수한 인간미를 추구하길 바라는 글감에 대한 얘기였다. 그런데 숭늉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 때문인지, 여자 화장실에서도 그 얘깃거리를 잇곤 했던 교민들의 모습이 정겨웠다. 따스했다.

잡은 손을 놓기가 아쉬웠다. 보이지 않고 흐르는 지하수처럼 가슴속의 말없는 속삭임이었다. 서로 맞잡은 손길에서 느끼는 남다른 체온, 작은 눈빛 하나에서도 느꼈던 혈육 같은 정(), 내 나라 내 민족의 따스한 그 정감을 누구와 더불어 어디에서 느끼며, 또한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특히, 호주한국문학 제4집을 발간하는 축하의 시간은 감사했고, 감미로웠다. 호주문학회를 대표하는 이기순 회장의 시집에서 <환상>은 ‘뒤돌아서면 뒤섞이는 좁쌀 같은 내 기억 주머니….이국(異國)의 햇살에 출렁이는데, 환상(喚想)의 거울 속에선 시드니의 가을 꽃대 흐늘흐늘 걸어 나온다.’는 한 편의 시를 만나면서 교민들과 마음의 징검다리를 놓게 되었다. 그 순간은 아름다운 축복의 통로였다. 한 핏줄, 한 겨레로 하나가 되어 우리는 참으로 뿌듯한 행복함을 품었다. 또 선물로 받은 석계 안상기 시집 <나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펼쳤을 때, “들꽃 같은 인생”에서 ‘캔버라와 시드니를 오가는 고속도로 비탈진 산아래 바람이 머물고 간 자리인가’ 란 싯귀에서 느끼는 감동은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시드니의 밤은 평화로웠다. 우리에게는 조용하면서도 아늑한 밤바다의 풍경은 작은 여유로 받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하버브릿지를 넘나들며 유희하는 박쥐들, 입 벌린 조가비를 연상하며 조각하듯 설계했다는 오페라하우스의 지붕,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 위의 하얀 집들은 실제로 느꼈던 여행객의 부러움을 자아내게 했다. 나도 모르게 어느 영화 제목처럼 잠 못 드는 시드니의 밤을 보냈다.

 

여행의 수준은 가이드의 역량을 넘기 어렵다 했던가, 첫 안내자로서 호주에 대하여 상식 이상의 설명을 상세히 해줘서 감사했지만, 이민 차세대로서 한국의 국방의무를 솔선수범으로 형제가 거뜬히 마쳤다는 고백에 우리는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랬다. 기장으로 은퇴하신 부친을 따라 이민을 했다고 해도, 군대를 다녀와야 대한의 사내로 거듭 태어날 수 있었다는 그 자신감이 넘치는 순발력과 당당한 모습에 우리는 감동의 물결을 이루었다. 또한 두 번째 만난 가이드가 남긴 한 마디는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저렇게 파란 하늘을 그대로 파랗게만 봐 달라”는 부탁이다. 감정세포가 막힌 사람은 이성을 못 느끼듯, 세상의 어느 한 단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순수함을 소중히 간직하라는 부연 설명도 덧붙였다. 마무리 설거지를 하러 나왔지만, 호주의 좋은 추억을 담긴 그릇을 깨지는 않겠다며, 그는 한 바탕 웃음을 퍼뜨렸다. 파란 하늘을 파랗게 볼 수 있는 수필가들, 그런 여러분들과 동행하는 이 순간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말. 그 말의 뜻은 지금도 음미할수록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고호의 엘로우 보다도, 샤갈의 블루보다도, 한국인의 까만 눈동자가 더 아름답다는 백남준의 남긴 한 마디를 떠올려 본다. 국제적인 화가의 예술혼이 깃든 시드니의 미술관과 고전적인 건축양식에서 성스러움이 물씬 풍겨나던 성당에서 받은 경이로운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눈부신 태양, 청정해역으로 둘러싸인 남태평양의 파라다이스 커다란 대륙, 시드니 공항을 이룩할 때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두 손을 모았다. 언제까지나 내 몸체와 문체의 건강함이 공존한다면, 고운 색깔의 추억으로 j간직하고 싶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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